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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공깃밥 3000원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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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밥은 단순한 탄수화물 덩어리가 아니다. 안부를 물을 때 “밥 먹었니”, 고마움을 표할 때 “밥 한 끼 살게”라고 한다. “언제 밥 한 번 먹자”는 말은 관계의 지속을 의미한다. 식당에서도 밥은 상품을 넘어 인심의 영역이었다. 메인 요리를 시키면 공깃밥은 당연히 따라왔고 “한 공기 더요”를 외쳐도 공짜였다. 공기(空器)는 ‘빈 그릇’이란 한자어다. 묵직한 놋쇠로 만들어 뚜껑을 덮어 품격을 갖춘 ‘주발(周鉢)’과 달리 가볍고 실용적인 그릇으로 우리 식탁의 주인공 역할을 해왔다. ▶지금의 스테인리스 공기는 1970년대 부족한 쌀 소비를 줄이려 혼·분식을 장려하던 시절 ‘절미(節米) 정책’으로 탄생했다. 1976년 서울시는 모든 식당에 지름 10.5㎝, 높이 6㎝의 표준 식기 사용을 강제하는 조치를 내놨다. 밥은 그릇의 8할만 채우는 게 원칙이었고, 뚜껑을 덮었을 때 밥알이 눌리면 안 됐다. 이를 어기고 고봉(高捧)으로 팔다 걸린 식당은 1개월 영업 정지를 당했다. 공무원들이 식당을 돌며 밥그릇 높이를 자로 재던 시절에도 주인들은 “야박한 인심은 천벌받는다”며 슬쩍 밥을 더 얹어 주다가 영업정지를 당하곤 했다. 법을 넘는 정(情)이 밥 인심에 담겨 있었다.

原文链接: 조선일보